국내 뉴스 뒤지다 발견한 사진 하나

이탈리아 콩사탕 창건의 주역이였던 그람시가 토리노에서 정치적 활동을 시작했을때 무솔로니는 이미 사회당 좌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무솔로니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팽창을 격렬하게 비판했고 당관료들의 개량주의와 소극주의를 문제 삼는 열렬한 사회주의자로써 젊은 세대의 존경과 숭배를 얻었다.

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의 참전 결정에 중립이라는 의견만을 내놓던 당을 비판한 무솔로니에게 그람시는 마찬가지로 당을 거역하며 무솔로니를 옹호하는 글을 기고했다.

무솔로니는 그 경력을 바탕으로 좌파의 선전선동 기법을 우파의 것으로 재가공한 파시즘이라는 한시대를 풍미한 이데올로기로 재탄생시킨다.

그람시는 무솔로니의 변신을 보면서 좌절에 빠져 1년 이상 글조차 쓰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무솔로니는 좌파를 열심히 소탕했으며 그람시 역시 옥중에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한채 갇힌 채로 지내다가 결국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석방된다.








그람시의 기분이 어떤건지는 이동네에서도 충분히 맛볼수 있을거 같다.

주례 서준 백기완 선생의 기분이 어떤지는 또 별개지만 말이다.

물론 저야 저 사람 옹호 한적도 좌파도 아니니 또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_~



Ps...동전이 떨어진건지도?

by 페페 | 2009/01/02 21:50 | 일상-잡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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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OT_DiGITAL at 2009/01/02 23:47
오오, 유연하군요. 저 자세 쉽지 않은데... :-P

NOT DiGITAL
Commented by 페페 at 2009/01/03 00:00
역시 자세가 유연해야 사상도 유연해지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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